오오 눈부시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지는 이 가슴의 기쁨.
최근 경북지역에 발생하는 화재통계에 따르면 용접·용단 등 불티가 발생하는 작업으로 인한 화재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다고 무시했던 작은 불티로 인명,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사랑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무리 뜨거워도 물 한 그릇 뎁힐 수 없는 저 노을 한 점 온 세상을 헤아리며 다가가도 아무도 붙잡지 않는 한 자락 바람 그러나 사랑은 겨울의 벌판 같은 세상을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산과 물을 셋씩이나 넘어 장가든 바보 신랑이 신부 데리러 간다. 고리짝에 인절미, 북어, 닭찜을 지고 가며 이건 인절미, 이건 북어, 이건 닭찜, 열심히 외며 가다가 개울 훌쩍 뛰어 건너다 이름 잊었네.
성터 거닐다 주워 온 깨진 질그릇 하나 닦고 고이 닦아 열 오른 두 볼에 대어 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곳에 무르녹는 옛 향기라 질항아리에 곱게 그린 구름무늬가 금시라도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하다.
신록의 계절인 5월이 시작되었다. 5월은 가정의 달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되돌아 보는 달이다. 그러나 가정의 달임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날 일본이 우리민족에게 저지른 만행은 배워 익히 알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나라가 힘이 없고 또 통치자를 잘못 선택하면 국민이 불행해 진다는 사실을 목도했다. 기시다 일본총리가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밭고랑에서 삐끗해 금 간 다리뼈 겨우 붙으니 늙은 어머니는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마당가로 가 참나무 아래서 도토리 주워 껍질 까다가 막내아들이 쉬라고 하면 내뱉었다 놔둬라이, 뼈에 숭숭 드나드는 바람 달래는 거여 장가 못 든 쉰줄 막내아들이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게 입문한 MZ세대 공무원들이 최근 4년간 3만 명이나 떠났다고 한다. 신의직장 철 밥통으로 불리는 국가직공무원들이 10년 넘게 최하위 8~9급에 머물러 있고, 물가인상보다 낮은 봉급인상으로 실질소득이 점점 줄어드는 바닥에서 하루빨리 탈출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그를 향해 도는 별을 태양은 버리지 않고 그 별을 향해 도는 작은 별도 버리지 않는 그만한 거리 있어야 끝이 없는 그리움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색 서정시를 쓰는 5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헨드릭 하멜이 조선에 표착한 것은 같은 네덜란드인인 벨테브레보다 약 26년 뒤의 일이었다. 하멜은 효종의 배려로 훈련도감에 소속되어 벨테브레의 지휘를 받으며 생활했다. 이들은 각자 화승총 한 자루씩과 화약, 총알을 지급받았고 봄에 3개월, 가을에 3개월씩 훈련을 받았다. 서울 체류 중에도 이들은 고국으로의 귀환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틈만 나면 탈출의 기회를 엿보던 중 그의 일행 중 2명이 청나라 사신을 통해 귀국을 시도한 것이 발각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나라 몰래 훈련도감에서 서양인을 고용하여 무기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조선의 입장은 매우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멜은 서울에서 훈련도감의 벨테브레의 부대에 소속되어 있을 때에도 벨테브레에게 함께 탈출할 것을 권유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벨테브레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결과적으로 벨테브레는 조선에 귀화하여 잘 적응해 공적을 남긴 인물이 되었고, 하멜은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조선을 서구 세계에 널리 알린 공적을 남겼다. 이것이 이들이 조선과 맺은 서로 다른 인연의 한 매듭이었다.
봄비가 내려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를 지난 요즘 사과, 배꽃이 만발한 농촌의 하루는 일손마저 바쁘다. 마스크의 착용 없는 일상의 지속과 직장인의 회식 그리고 농사철에는 한 잔의 술을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제하지 않는 술잔의 시작은 대리운전과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는 평범한 판단을 하지 못해 음주운전이 발생하고 심지어 사고로 이어지기까지 해 음주운전은 공공의 적(敵이)자 도로교통의 적신호가 되고 있다.
어스름 녘,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꾸벅 꾸벅 졸다가 어깨에 얹혀오는 옆 사람의 혼곤한 머리, 나는 슬그머니 어깨를 내어준다. 항상 허세만 부리던 내 어깨가 오랜만에 제대로 쓰였다. 그래, 우리가 세상을 함께 산다는 건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피로한 머리를 기댄다는 것 아니겠느냐 서로의 따뜻한 위로가 된다는 것 아니겠느냐
네덜란드도 본국인들의 송환을 위해 일본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고 이에 일본은 이런 기회를 이용해 네덜란드에게 유리한 교역조건을 제시하려 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조선에 대하여 억류한 네덜란드인들을 송환하라고 강력한 항의와 요구를 해왔다. 이때 일본은 조선에 남은 하멜 일행을 송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은 이유를 따졌다. 이에 대하여 조선 조정은 지난 번(26년 전) 조선에 표착한 벨테브레(박연)를 왜관을 통해 일본에 보내려 했을 때는 벨테브레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본이 거부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조선은 이것을 구실로 내세웠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 측에서 하멜 일행이 표류했을 때 난파선에서 약 30만 냥에 해당하는 노획물만 빼앗고 이들을 억류한 것이 아니냐고 항의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조선 조정은 전라도에 남아 있던 하멜 일행을 결국 일본으로 송환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만 고국에 돌아갔을 때, 탈출한 자들과 송환된 자들 사이에 밀린 임금의 지급에는 차이가 있었다.
지난 4월 20일은 제43주년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은 단순히 장애인을 위한 날이 아닌 장애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돕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분산 배치된 일행 중 하멜은 여수 수영의 진남관에서 문지기 생활을 약 3년간 하였다. 눈비가 올 때나 뙤약볕 아래에서나 온 종일 보초를 서야 하는 이들은 병영의 수군절도사(水使)가 어떤 사람이 부임해 오느냐에 따라 삶의 질도 달라졌다. 선정을 베푸는 사령관이 부임해오면 이들의 생활도 참을 만 했지만 혹독한 수사가 올 경우에는 견뎌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훈련도감에 있을 때 탈출을 시도한 사건으로 인하여 죄인이 되어 방치된 이방인들, 조선의 입장에서는 없어도 그만인 귀찮은 존재였을 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조선에서의 생활이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하멜 일행의 조선에서의 생활은 좋은 대우를 받으며 고관의 지위에까지 오른 벨테브레(박연)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아기 손가락만큼 한 문구멍으로 들어온 햇살이 눈부시다 아침에야 이르러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간밤의 어둠 속 먼지
묵시아에서 29킬로미터를 걸어 피스테라에 도착했다. 긴 하루가 지나가고 새 날이 밝았다. 그렇게 2022년 6월 28일 월요일 오늘, 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0.00킬로미터 표지석 뒤로 펼쳐진 검푸른 대서양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상념에 젖어있다. 난생 처음 보는 대서양은 늘 보던 바다고, ‘세상의 끝’이라는 피스테라도 늘 밟던 땅이고, 그 곳을 보고 밟으며 서 있는 나도 어제의 나다. 다른 것은 없고 달라질 것도 없다.